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새누리당 대권 지지율 2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결국 자진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들부들하며 그를 저격한지 꼭 13일만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8일, 의원총회가 끝난 직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사퇴문을 읽어내렸다.

그는 사퇴문에서 국민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며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 원내대표자리를 던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며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유난히 가치를 강조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빗대 '배신의 정치'라고 한 것에 대한 반박이라는 해석이다. 사퇴문을 두고 새누리당의 반응은 엇갈렸다.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은 JTBC와 통화에서 '유승민식 정치엔 자신만 있고 우리는 없다'고 일침했다.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령도자 박근혜 대통령을 의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친박계 핵심의원도 JTBC와 인터뷰에서 먹던 우물에 침을 뱉는 격이라고 쓴소리를 날렸는데 누군가 변기를 우물로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비박계 정두언 의원은 '김무성 대표와 지도부가 거취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불만을 표시했고 사대강 전도사이자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물러나야 될 사람은 최고위원들'이라며 비판해 이러다 검찰 수사를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줄곧 사퇴요구가 있어 왔으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의원들의 뜻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밝혀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정당 사상 처음으로 원내대표의 거취를 논의하는 의원총회를 열었다. 그는 당규에 의해 의총에 참석할 수 없어 사무실에서 머물렀다.

설전은 의총 전부터 시작됐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사퇴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사퇴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자체가 사퇴할 이유'라며 박근혜 병맛 화법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반면 비박계 정두언 의원은 '의총에서 이런 개콘 같은 일 말고 지도부와 청와대 대화 촉구 결의안을 주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근데 정두언도 개콘 보나(...).

김무성 대표는 의총 머릿말에서 '때로는 자신을 던지면서 나보다는 당을, 당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당을 위해 희생하는 결단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친박계 오야붕인 서청원 최고위원 역시 '사퇴는 불명예가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라며 유승민 원내대표를 압박했다. 대통령 하야는 불명예가 아니라 아름다운 것

유승민 원내대표의 측근들 5~6명이 표결을 요구했으나 당내 분란을 이유로 대부분의 의원들이 반대해 무산됐다. 결국 권고문, 결의문, 표결도 없이 북한처럼 의원들이 박수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하는 것으로 끝났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결과를 예측한듯 전날 밤 자정까지 의원회관 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퇴 회견문을 준비했다고 한다. 의총이 끝난 후 김무성 대표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결과를 전달했고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퇴 기자회견을 갖겠다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우리가 어찌 이래 됐노, 한 번 안아줄게'라며 유승민 원내대표를 포옹했다고 한다. 숨겨 왔던 나의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본진인 대구 동구로, 내년 공천은 물 건너 가지 않았냐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박근혜가 까면 흥한다는 공식이 이번에도 여지 없이 적중했다.

사퇴한 날 당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16.8%를 기록, 19.1%의 김무성 대표에 이어 오차범위내 2위를 차지했다. 5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4%로 6위를 차지한 듣보가 박근혜 대통령의 버프로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것이다(...).

새누리당 차기 대권 후보 지지율(출처: JTBC)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아닌 김무성 대표다. 새누리당 차기 대권 주자 1위인 김무성 대표에게 유력한 경쟁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 여권의 대권 주자들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야당 코스프레하다가 대선에서 당명 세탁하고 정권교체 드립을 쳤다. 이번 당청 갈등에서 김무성 대표는 찍소리도 못하고 버러우해 쫄보라는 이미지만 생긴 반면 유승민 원내대표는 합리적인 보수라는 인상을 각인시켰다.

친박계가 진짜로 노리는 건 유승민 원내대표가 아니라 김무성 대표라는 썰까지 있는 마당에 이해가 안 가는 행보인데, 그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됐다.

첫째, 유승민 의원의 지지율 폭등으로 김무성 대표의 대권 행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 둘째, 유승민 의원이 버티다가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줄사퇴하면 지도부가 해산돼 김무성 대표까지 물러나야 하기 때문. 셋째, 김무성 대표가 십상시들에게 약점 잡혔다(...).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는 역설적으로 힘의 균형을 김무성에서 유승민으로 이동시킨 사건으로 향후 새누리당 권력 다툼이 아주 재미있게 됐다. 야권 지지자들에게도 희소식인 게, 김무성 대통령보다야 유승민 대통령이 낫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