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중단: 중지 이유, 김무성, 출구전략

더불어민주당이 테러방지법 처리 지연을 위한 필리버스터를 8일 만에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3월 10일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로 지연한 법안은 다음 회기에서 바로 표결에 부쳐지기 때문에 법안 폐기는 불가능하다.

필리버스터는 법안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것인데 테러방지법의 실체와 국정원, 새누리당의 의도를 충분히 알렸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럼에도 필리버스터를 중단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지율 상승에 대한 기대다. 24일까지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하락한 반면, 더민주와 정의당 지지율은 대폭 상승했다. 하지만 25일부터 야당의 지지율은 정체되고 애국보수들이 결집해(...) 상황이 역전됐다.

잘 모르고 무식하지만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투표권이 있는 한 어쩔 수 없다.

둘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 대한 압박이다. 원래 대통령의 퇴임이 가까워질 수록 지지율이 떨어지고 당 넘버원은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야당 코스프레를 한 다음 차기 대권 주자가 된다.

더민주 신경민 의원 필리버스터(출처: 국회TV)

새누리당 넘버원 김무성 대표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딴지를 걸면서 대권을 준비했지만 박근혜 교주의 지지율이 임기 초반 그대로라(...) 김무성 대표에게 실권이 없었다. 게다가 사위 마약 사건 등으로 친박에게 약점이 잡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친박은 전략공천을 통해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 현역 의원들을 물갈이하고 진박(실한 근혜계)으로 교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무성 대표는 대권은 커녕 공천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돼 버렸다(...).

반면, 비박계는 오픈 프라이머리(시민들이 참여하는 경선)를 통한 공천을 요구하고 있다. 경선은 현역 의원에게 유리한데다 진박은 박근혜팔이 외에는 내세울 게 없어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경선은 3월 4일 시작하기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경선을 하려면 선거구획정을 처리해야하고 특히 공직선거법은 늦어도 29일까지 국회를 통과해야하는데 23일 필리버스터가 터진 것이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 필리버스터(출처: 국회TV)

필리버스터 중에는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 비박은 경선을 못 하면 죽기 때문에 더민주는 선거구획정과 공직선거법 통과를 미끼로 비박을 설득해 테러방지법 부결를 노렸다.

실제로 김무성 대표는 필리버스터 첫 날, 새누리당 지도부와 사전 협의 없이 11개월 만에 선거구획정안 처리에 합의했고 이틀 후, 비박 측에서 '친박이 살생부를 만들어 김무성 대표에게 전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세한 건 여기를 클릭.

친박, 비박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비박의 이탈이 기대됐지만 30시간의 법칙에 의해(...) 29일, 김무성 대표의 사과로 급마무리됐다. 비박 수장이 꼬리를 내린 이상 비박 쿠데타의 희망도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더민주는 필리버스터 중지를 결정했다.

물론, 필리버스터를 완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거구획정 지연으로 총선이 연기된다면 종편과 지상파 빨갱이 뉴스들이 책임을 야당에게 뒤집어 씌울 게 뻔했다.

필리버스터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을 뿐더러 국민들 절반은 애국보수 빨갱이 언론들이 주는 먹이만 먹는다. 더민주도 이를 의식해 필리버스터를 정회한 뒤 선거법 처리를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이 거절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 필리버스터(출처: 국회TV)

그럼 필리버스터가 정치쇼였냐고? 이종걸 원내대표와 운동권 출신 등 필리버스터를 주도한 강경파는 조기 중단을 반대했기 때문에 이들의 진실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반면, 중단을 결정한 국보위 김종인 대표와 리틀 박근혜 박영선 비대위원은 중도파다.

강경파는 명분과 감성을, 중도파는 실리와 이성을 선택한 것이다. 똥 싸다 만 느낌이지만 집에 불나면 똥 끊고 나오는 게 맞기 때문에 중도파의 결정에 동의한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박근혜 정권이 천하의 개썅년이란 것과 평소 병신처럼 보였던 야당 정치인들이 실제로는 매우 유능하다는 사실을 알린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더민주 또한 막판에 예전 모습이 나오긴 했지만(...) 모처럼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더민주에 배신감을 느껴 지지를 철회하겠다면 정의당에 투표하라. 필리버스터 완주를 주장한 유일한 정당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