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 '시사대담' 황봉알과 10년 만에 재회한 사연

김구라가 10년 만에 무명 시절을 함께했던 시사대담의 황봉알과 연락을 했다. 황봉알은 팟캐스트 '이이제이'에 출연, 김구라와 10년 만에 연락이 닿았고 구봉숙 트리오가 곧 자리를 함께할 것이라 밝혔다.

아니 황봉알이 누구야?라고 할 독자들이 많을 테니 황봉알이 누군지부터 설명하겠다. 황봉알(...)이란 이름이 범상치 않은데 사실 예명이고, 본명은 황원식으로 SBS 공채 4기 출신의 개그맨이다. 김구라가 SBS 공채 2기니 황봉알이 후배다.

여기서 한 명을 더 소개해야 하는데 바로 노숙자다. 노숙자의 본명은 최두영으로 SBS 공채 3기 개그맨이다.

세 명 모두 SBS 시절에는 본명으로 활동했지만 단역 신세를 면치 못 했다. 결국 SBS에서 일감이 끊겼고(...) 인터넷 방송에서 막장 개그 방송을 시작하는데 김구라, 황봉알, 노숙자란 예명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이들은 예명의 가운데 글자를 하나씩 따와 자신들을 구봉숙 트리오라고 불렀다.

2001년, 황봉알은 주병진이 시작한 인터넷 방송사인 '프랑켄슈타인'에서 쌍욕을 가르쳐 주는 코미디 프로를 맡지만, 주병진이 꽃뱀에 물리면서(...) 방송사가 문을 닫고 백수가 된 황봉알은 팬클럽 회원을 통해 김어준의 딴지일보를 소개받는다.

황봉알은 김구라와 같이 딴지일보에서 새 방송을 시작하는데 이게 바로 전설의 방송 시사대담이다. 시사대담은 시사 얘기하긴 했지만 핫이슈, 특히 연예인 뒷담화가 주를 이루는 B급 방송이었다. 김구라가 주 진행자였고, 황봉알은 옆에서 쌍욕을 하고 음담패설(...)로 거드는 보조 진행자, 노숙자는 가끔 출연하는 게스트였다.

쌍욕, 음담패설, 연예인 성적 비하, 증권가 찌라시 소문 등 디시 막장 갤러리에서나 할 만한 얘기들을 방송에서 했으니 그 충격은 엄청났다.

황봉알(출처: 채널A)

김구라는 아직까지도 방송에서 과거 막말로 곤혹을 치르는데 대부분이 바로 이 시사대담에서 나온 것이다. 호불호가 극명히 갈려 수 많은 매니아 팬들과 안티들을 양산했고, 일부 팬들은 후일 유명인이 되는데 슈퍼주니어의 희철, 가수 휘성, 만화가 주호민 등이 대표적이다.

시사대담은 개막장 방송이었지만, 오늘날 팟캐스트의 모태가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국내 팟캐스트의 원조 나는꼼수다의 진행자 김어준이 시사대담을 방송했던 딴지일보 발행인이고, 김용민 PD은 시사대담의 후속이라고 할 수 있는'김구라, 황봉알의 날방개그' PD였다. 일부 청취자들이 나는꼼수다를 시사대담 시즌 2라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꼼수다의 뒤를 이은 인기 팟캐스트 이이제이 역시 시사대담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큰 소리로 쌍욕하는 이박사의 캐릭터는 황봉알을 그대로 따라한 거고, 이작가는 구봉숙 팬카페 출신이다.(...)

반면 시사 팟캐스트들이 죄다 B급이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구봉숙 트리오는 시사대담을 통해 얻은 유명세로 케이블까지 진출한다. 여기서 김구라는 KBS 라디오 PD의 눈에 띄어 '가요광장'의 DJ로 전격 발탁, 지상파 라디오에 입성하는 쾌거를 이룬다. 김구라는 이를 발판으로 지상파 TV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무명 시절 다져진 말발과 폭넓은 상식 등 기존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캐릭터로 A급 연예인으로 도약한다.

구봉숙 트리오(출처: ETN)

김구라는 지상파 복귀 초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황봉알과 노숙자를 게스트로 초대하는 의리를 보이기도 했으나, 주위 사람들의 권고로 거리를 두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연락을 끊어 버린다.

무명 시절, 김구라가 유재석이었다면 황봉알은 박명수였다. 황봉알은 김구라가 받쳐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그나마 노숙자는 김구라와 황봉알에게 묻어가는 신세였다.(...)

김구라가 연락을 끊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황봉알과 노숙자는 큰 배신감을 느꼈고, 둘은 자신들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에서 '우리는 그러지 말자'도 다짐하는 궁상을 떨기도 했다. 황봉알과 노숙자는 결국 팀을 해체해 황봉알은 지역 방송을 전전하고 노숙자는 방송마저 끊겨 지금은 식당을 한다.(...)

많은 구봉숙 트리오 팬들은 김구라를 비난했다. 하지만 김구라와 고등학교 동창에 SBS 개그맨 동기인 지상렬도 자신이 떴을 때 전혀 김구라를 도와 주지 않았던 걸 보면 원래 이 바닥이 그런가 보다.

그리고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2014년 12월, 김구라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며 홧병 공황장애로 입원한다. 아내가 김구라 몰래 빚보증을 섰던 게 엎어졌고, 이 빚을 갚기 위해 사채까지 끌어쓰다 18억의 빚을 져 재산 가압류 통지를 받은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뉴스에서 김구라의 입원 소식을 접한 황봉알은 10년 만에 김구라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위로의 문자를 보내기로 한다. 황봉알도 한 때 심각한 공황장애를 앓았던 터라 측은지심이 생긴 것이다. 영화관은 당연히 못 가고, 운전을 하다가도 터널이 나오면 지나가던 택시기사에 터널만 통과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황봉알은 10년 만에 문자 보내네요. 30대 중반에 헤어졌다 40대 중반이 됐네요. 공황장애 극복하고 일 잘 해결되길 바래요.라는 문자를 보낸다. 김구라는 30분 뒤 원식씨, 고마워요.라고 짧막하게 답장을 보낸다. 김구라는 그 30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출처: MBC

과거 인터넷, 케이블 방송에서 서로 쌍욕하고 낄낄댔던 개막장들이 왜 느닷없이 존댓말을 하는지 의아해 할 수 있는데, 사실 김구라, 황봉알, 노숙자는 사석에서 서로 존대를 한다.

김구라가 가장 윗 기수고, 그 다음이 노숙자, 황봉알이 가장 아랫 기수지만 김구라와 황봉알이 동갑이고, 노숙자는 한 살 어리다. 기수와 나이가 꼬였기 때문에 황봉알은 김구라에게 '현동선배'(김구라의 본명이 김현동), 김구라는 황봉알에게 '원식씨'라고 하는데, 김구라가 노숙자보다 기수, 나이가 위임에도 서로 존칭을 쓴다.(...)

개그맨들 사이에는 똥군기가 있고 이들이 데뷔했던 90년대 중반에는 나이 많은 후배에게도 욕설, 구타가 횡행했던 걸 감안하면 이들의 관계는 매우 특이하다 하겠다.

그리고 며칠 후, 김구라는 황봉알에게 10년 만에 전화해 걸어 온다. 김구라는 '나에게 서운하지 않았냐'고 물은 뒤 '2004년에 우리가 돈은 못 벌었지만 그 때가 정말 행복했다. 인생은 어렵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든 곳이다'고 말했다. 이후 한 시간 동안 서로 사는 얘기를 하다가, 노숙자도 같이 해서 구봉숙 트리오가 10년 만에 식샤를 하기로 한다. 남북정상회담 전격 합의

황봉알이 김구라에게 섭섭해 한 건 사실이지만 어느 날 지인에게 '가족도 안 도와 주는데 김구라가 널 왜 도와주냐'는 말을 듣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오히려 주위에서 '김구라가 왜 안 도와주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힘들었다고. 황보살

황봉알이 무명 개그맨이라 어렵게 살 것 같지만 그 반대다. 동남보건대학 안경광학과 출신이라 부업으로 안경점을 했는데 꽤 잘 됐다고 한다. 지금은 방송 일정이 바빠(!) 형한테 넘겼다고. 아내도 20년 전부터 엘지에서 근무 중이니 수입이 적지 않을 듯. 게다가 아내가 재테크에 능해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가 대박이 나, 지금은 사는 집 외에도 용산파크자이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다고 한다.

반면, 같이 고생한 동료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10년 동안 A급 연예인으로 활동한 김구라는 현모양처(...) 덕에 빚더미에 앉았으니 세상일이란 게 참 모를 일이다.

황봉알은 내심 구봉숙 트리오의 재결합도 바랬는데 김구라가 동의할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