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중수부장 폭로, 국정원이 노무현 사건 언론 공작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진두지휘한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수사 당시 국정원이 언론 공작을 펼쳤다고 폭로했다.

이인규 전 중앙수사부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표적 흑역사인 논두렁 시계국정원의 언플이었음을 실토했고 이를 경향신문이 단독보도했다.

당시 검찰조사에서 검사가 회갑 선물로 받은 명품시계를 어떻게 했는지 묻자 노무현은 시계 문제가 불거진 뒤 (권양숙 여사가) 바깥에 버렸다고 합디다.라고 답변한다.

그러나 원세훈의 국정원이 여기에 논두렁을 슬쩍 집어넣어 언론에 흘렸고 애국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권양숙 여사가 1억 원 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진술했다'고 대서특필한다. 그리고 열흘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한다.

소문만 무성했던 국정원 공작 사건에 대해 핵심 관계자가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공론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양심선언으로 국정원을 코너에 몰아 넣은 이인규 열사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2008년 4월, 소고기 수입 협상을 개판으로 해 전국에서 촛불집회가 일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지율이 폭락하고 구석에 몰린 쥐 신세가 된다. 이 때, 정치적 이유가 아닌 검찰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로 노무현 전 대통령 친인척 비리 사건인 박연차 게이트가 터진다.

2008년 9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대검 중수부)는 박연차 게이트 조사에 착수해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이하 중수부장)이 직접 지휘를 맡는다.

소환되는 노무현을 바라보는 이인규 중수부장의 미소(출처: 연합뉴스)

2008년 11월, 대검 중수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민폐 친형 노건평을 구속하는 것을 필두로 2009년 4월 11일에는 권양숙 여사, 12일에는 아들 노건호를 소환조사했고 30일에는 노무현 본인을 소환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검찰에 소환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웃음짓는다.

이인규가 이끄는 대검 중수부는 수사 과정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며 대놓고 피의사실을 공표해 이명박 대통령을 기쁘게 했다. 박희태 당시 한나라당 대표마저 '저런 건 처음 봤다'며 놀라워했을 정도.

이인규 중수부장 등 수사팀은 피의사실 공표죄로 고발됐지만 검찰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피의사실 공표죄는 아니다며 자상한 모습을 보였다. 즉, 피의사실을 공표했지만 피의사실 공표죄는 아니다.

대검 중수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사가 끝나고 기소 여부를 한 달이나 미루면서 간을 보며 노무현의 피를 말렸고 여기서 국정원의 언론 공작이 더해지자 그는 결국 자살한다.

역대급 병신 수사의 총책임자였던 이인규 중수부장은 2009년 7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이인규 중수부장의 퇴임식(출처: 노컷뉴스)

이인규 중수부장은 2009년 퇴임사에서 검찰의 과잉 수사 비난에 대해 수사 중 예기치 못한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수사팀에 대해 사리에 맞지 않는 비난과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내가 뭘 잘못했냐.

그는 검찰의 노무현 수사를 쉴드치면서 부정부패에 대해 관대한 사회는 문명사회라고 할 수 없으며, 미개사회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혔는데 이명박 정권의 부정부패에 버로우탄 본인이 미개하다는 것을 돌려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또 검찰의 역사는 불의와의 투쟁의 역사입니다.라고 일갈했지만 이인규 자신은 국정원의 공작을 알고 있었으면서 찍소리도 못 했다. 따라서 불의와 싸워야 하는 검사란 직업이 본인과 맞지 않아 그만 둔 것일 수도 있다.

이인규는 퇴임 후 이명박 정권 시절 잘나갔던 법조인들이 모여 있는 로펌 바른에서 파트너 변호사(임원)로 일하며 떼돈을 버는 중이다.

2015년, 이인규는 경향신문 기자에게 '그 사건을 맡은 것 자체가 내겐 불행이었다. 이후 내 진로도 틀어지고 가족들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하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겨레 이순혁 기자가 쓴 검사님의 속사정이란 책을 보면 노무현 사망 1년 뒤 이인규가 노무현의 자살로 검사를 그만 두게 된 것을 불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평생을 검사로만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저승에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 왜 그랬느냐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빚을 갚으라고 말할 것이다.

니가 죽어서 내 출세길 막혔으니 책임져라.

박연차 게이트를 브리핑하는 이인규 중수부장(출처: 이투데이)

이인규가 경향신문 기자에 한 말을 다시 읽어 보면 지 진로 틀어져 징징대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국보수 이인규는 왜 뜬금없이 5년이나 지나 팀킬을 한 것일까.

첫 번째 가설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이 차기 대권 후보 가운데 가장 높자 정권 바뀔 때를 대비해 국정원에 책임 떠넘기기라는 것이다. 이인규의 대학동창인 한 중견법조인은 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인규의 스타일이 공은 자신이 챙기고 책임은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기는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스타일

두 번째는 우병우 신임 민정수석에 대한 이인규의 열폭설이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은 관례를 무시하고 우병우 서울지검 부장을 대검 중수부로 데려갈 정도로 코드가 맞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둘은 완전히 틀어졌다. 이인규가 책임을 떠넘겼나

그러다 우병우가 올해 1월 민정수석으로 폭풍 영전하면서 이인규가 열폭해 국정원 떡밥을 흘려 당시 담당검사였던 우병우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공무상비밀누설 공소시효 5년이 끝나자 마자 요이, 땅하고 말한 걸 보면 지극히 계산된 발언으로 보인다. 노컷뉴스는 이인규 중수부장과 같이 근무했던 한 법조인의 말을 인용, 이인규가 잔머리를 쓰거나 꼼수를 잘 쓰는 편이라고 보도했다. 이명박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원이 공작을 하려면 소스가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이 도청을 하지 않은 이상 대검 중수부가 국정원에 소스를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이인규의 이번 폭로는 지만 살겠다고 뒤통수 때린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