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유해진 주연의 극비수사는 납치된 아이를 사주풀이로 추적하는(...) 형사와 도사의 33일 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예고편은 '1978년 실제 이야기'라는 문구로 시작하는데, 1978년에 있었던 부산 정효주 유괴사건을 말한다.
당시 9세였던 정효주는 부산 수산업체 사장의 막내이자 외동딸로 사립인 남성국민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1978년 9월15일 낮 12시, 골목길에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효주에게 40대 남자가 접근한다. 그는 효주에게 자신의 차 트렁크 열쇠를 빼 달라 부탁했고 답례로 가는 곳까지 태워 주기로 한다. 하지만 효주가 차에 타자 그길로 서울로 가 버렸다.
남자의 이름은 매석환으로 탈영 전력에 4.19 발포 명령 주동자인 곽영주의 아들을 유괴하는 등 전과 9범이었다.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불법 택시 영업을 하던 그는 승객을 부산에 내려 주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남성국민학교에 부잣집 자식들이 많이 다닌다는 것을 알고 즉흥적으로 납치를 결정한 것이다(...).
낌새가 이상함을 느낀 효주가 울음을 터트리자 그는 '내가 니 아버지 친구인데, 니 아버지가 5000만 원의 빚을 져 부산 세관에 잡혀가는 바람에(...) 너를 나에게 맡겼다'고 속였다. 이후 효주에게 불고기를 사 먹이고 새 옷도 네 벌이나 사 주는 등 잘해 줘서 효주는 그를 좋은 아저씨로 생각하고 따랐다고 한다(...).
매석환은 이후 효주를 데리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가족들에게 협박 전화를 한다. 효주는 그에게 속아 5000만 원을 줄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써 어머니에게 보내기도 했다(...).
유괴 사건인 만큼 철저히 비공개 수사였다. 효주의 부모는 딸의 행방을 알기 위해 유명 무속인들은 찾아갔는데 다들 효주가 죽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김중산 도사는 효주가 살아있다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유해진이 맡은 역할이다.
매석환은 부산은 불안하다며 당시 서울에 살고 있던 정효주의 이모와 협상하겠다고 정효주 부모에게 알리고 서울로 간다. 유괴 33일째 되던 날, 그는 공중전화를 물색하던 중 잠복해 있던 부산경찰서 공길용 경사에게 검거됐다. 영화에서 김윤석이 맡은 배역.
검거 당시 효주는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보고 있었다(...). 효주는 아버지를 보자 부산 세관에 잡혀있다더니 왜 서울에 있냐고 황당해 했다고 한다(...).
납치 차량 번호판을 알아내기 위해 국내 최초로 최면술 수사기법이 도입된 사건인데 수사 해결에 도움은 안 됐다(...).
매석환은 10년형을 선고받고 1989년 만기 출소했다. 여기까지가 잠복수사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다.
그런데 사건 7개월 뒤인 1979년 4월, 효주는 등교길에 또 다시 납치된다. 납치 사건 이후 효주는 항상 가족들과 등하교를 같이 했는데 딱 하루 거른 날 유괴된 것이다.
범인은 효주를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효주의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부모에게 보내 1억 5000만 원을 요구했다. 현재 가치로 10억이 넘는 큰 돈이다.
첫 번째 납치 때와는 달리 공개 수사로 진행됐는데 이미 납치된 전적이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전국이 떠들석했다. 부산시는 전단 60만장을 배부했고 효주 아버지도 방송에 출연해 딸을 보내 줄 것을 범인에게 호소했다. 1차 유괴범 매석환은 2차 유괴범에게 효주를 부모 품에 돌려 보낼 것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5일째, 박정희 대통령은 유괴 사건 최초로 특별 담화를 발표하고 '효주를 무사히 돌려보낸다면 관계기관에게 범인의 죄를 가능한 관대히 다루도록'할 것이라 말한다. 근데 처벌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월권 행위다(...).
그리고 당일 밤, 효주는 거짓말처럼 경주톨게이트 인근에서 무사히 발견된다. 독재의 순기능
1년8개월 뒤 범인 이원석이 잡혔는데 바로 정효주 아버지의 운전기사였다. 딱 하루 혼자 등교한 날을 어떻게 범인이 알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그는 병역기피자는데 1차 유괴범 매석환 역시 탈영 전과가 있었다(...).
이원석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처 약속과는 달리 재판에서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의 차녀 박근령이 '아버지의 약속에 따라 선처해주기 바란다'는 탄원서를 제출해 20년 형으로 감형됐다. 박정희 왕조의 위엄
이원석은 1999년 출소했지만 박근령 공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2008년, 육영재단을 찾아가 어린이를 위해 써 달라며 150만원을 기부했다. 앗싸 꽁돈이다
정효주는 납치를 두 번이나 당했으면서 무사히 돌아온 걸 보면 살 팔자였나 보다. 유괴 사건이후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나 이후 미국 유학 중 만난 남편과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김중산 도사는 여전히 부산에서 철학관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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