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트 미대사 테러,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는 누구?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를 과도로 테러한 김기종은 공식적으로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이하 우리마당) 대표지만 실상은 개백수다.

조선일보는 우리마당을 통일 관련 시민단체로, 동아일보는 진보성향 문화운동 단체로 소개했는데, 정부 지원금도, 후원금도 없는 1인 단체다. 우리마당의 다음 카페 회원 수가 27명(...)인데, 하다 못해 본 블로그 고정 독자수도 30명은 넘으니 사이즈가 대강 나올 것이다. 도찐개찐

우리마당 사무실은 서울 서대문구 창전동 다세대주택에 있는 김기종 대표의 방 2개 짜리 월세방으로 그나마 집세가 4~5달 밀렸다고 한다.(...) 집주인은 이제 밀린 집세 못 받을 듯

김기종은 1959년생, 올해 나이 55세로 직업도, 가족도 없으며 형제와 연락도 끊겼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에 40만 원을 받는 게 수입의 전부라 주민센터에서 쌀을 지원받을 만큼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교도소에 갔으니 밥 굶는 일은 없을 듯. 옷도 얼마 없어서 겨울철에는 문제의 개량한복만 입고 다녔다고 한다.

전과 6범에 여기 저기 사고만 치고 다녀 서울 정보과 형사들 중에 김기종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김기종은 민족주의 성향 운동권 출신으로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인 1984년, 탈춤, 판소리 보급을 목적으로 재야 문화운동단체인 우리마당을 창립한다. 이후 우상호 의원이나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등 현직 정치인들이 우리마당을 거쳐간 것을 보면 과거에는 꽤 지명도가 있던 단체였던 것 같다.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출처: SBS)

그는 통일병 환자답게 1985년 8월, 광복 40주년을 맞이해 주한 미국 대사관 담장을 넘어 성조기를 태우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김기종은 서울올림픽 남북공동개최(...)를 주장하며 당시 노태우 정권과 갈등을 빚었는데, 개막을 한 달 앞둔 1988년 8월 17일 새벽 4시, 괴한들이 우리마당 사무실에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짧은 머리에 흰색 운동화를 신은 4명의 괴한들은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사무실 안에서 자고 있던 대학생 남성을 준비해 온 각목으로 패고 여성은 성폭행한 뒤 캠코더를 훔쳐 달아났다. 이게 바로 우리마당 습격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캠코더가 없어졌으니 단순 절도범들의 우발적 범행(...)이라며 질질 끌었다. 당시 인권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았지만 경찰의 소극 대처우리가 남이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우리마당 사무실이자 김기종 자택(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사건 발생 16년 후인 2004년, 이종일 전 북파공작원이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우리마당 습격사건은 북파공작원이 동원된 테러라고 폭로하면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그후의 일은 다음 편에서 설명하겠다.

김기종은 숭실대학교 통일정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1997년부터 10여년 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활동했다. 외래교수는 쉽게 말해 시간 강사니 운동권 연줄로 10년 동안 띄엄띄엄 강의를 맡은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 김기종은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란 정체 불명의 시민 단체를 만들어 대표직을 맡는다. 1998년, 김대중 정부들어 남북관계가 유연해지자 김기종은 우리마당을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로 이름을 바꿔 본격적인 통일운동(...)에 나선다. 국민 세금 지못미

그는 이 기세를 몰아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를 통일운동 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에 가입시켰는데, 이는 17년 후 리버트 미대사의 테러를 위한 발판이 된다.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김기종 대장(출처: 연합뉴스)

김기종은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민주평화통일회의(...) 자문위원으로,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에 위촉됐다. 운동권 출신들이 형님, 아우 하면서 개나 소나 한 자리씩 꽂아 주던 버릇이 빚은 참극이다.

2006년 5월에는 우리마당 독도지킴이라는 1인 단체를 만들어 스스로를 대장(...)으로 부르며 사업 확장을 꾀한다. 물론 사무실은 자기 집이다.(...)

같은 해,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그는 동료 6명과 같이 본적을 독도로 옮기기도 했는데 이 때는 김기종의 악명이 알려지기 전이라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정부의 허가를 받고 8차례 방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 허락도 없이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방북한 적도 있으니 김기종의 방북이 문제될 것은 없지만, 북한에 가서 통일뽕을 한 사발 마신 이후 컨셉을 반일에서 반미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김기종은 밥 잘 먹고 뜬금없이 한겨레 기자를 만나 우리마당이 정보기관에 사찰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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