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왜? 뜻, 하는 이유, 기한, 종료 후

국회에서 47년만에 필리버스터가 진행됐다. 필리버스터란 법안의 국회 표결에 앞서 무제한 토론을 벌이거나 끝 없이 수정안을 제출해 표결을 방해하는 행위로 의사 진행 방해라고도 한다.

국내에서는 무제한 토론으로만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 토론이 끝날 때까지 표결을 할 수 없지만 발언 중 휴식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은 몇 시간, 정당은 몇 주 정도 지연시키는 게 전부다. 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소수파의 몸빵이라 하겠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의제와 관계 없는 발언이 허용되기 때문에 자서전, 동화책(...), 성경책(!), 전화번호부(!!!!!!!!!)를 읽는 의원들도 있다.

필리버스터 국내 최장 기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4년 세운 5시간 19분으로 다른 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원고도 없이 물도 안 마시며 발언했다. 결국 임시국회가 마감되면서 체포동의안 처리가 무산됐고 세계 최장의 성공한 필리버스터로 기록돼 기네스 증서(...)도 받았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선포 직후인 1973년, 발언 시간이 제한되면서 필리버스터가 불가능해졌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도로 2012년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이 시간 제한을 없애 다시 가능해졌다. 갓카

더민주 김광진 의원(출처: 국회방송)

2016년 2월 23일, 테러방지법을 빙자한 민간인사찰법의 상임위원회 통과가 어려워지자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직권상정, 즉 국회의장 자격으로 본회의에 넘겼다. 새누리당이 과반이라 표결에 부치면 100%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필리버스터로 표결을 지연시키기로 결정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의원 전원이, 국민의당은 일부만 참가했다.

'여당도 발언이 필요하다'는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의 제안으로 조원진이 또 이철우, 권성동, 박민식, 김용남, 하태경 등 새누리당 의원들도 필리버스터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즉, 새누리당 의원들도 필리버스터에 참여해 표결을 최대한 지연시키겠다 그러고 보니 하태경이 주사파. 결국 새누리당은 필리버스터 참여 입장을 철회했다(...).

더민주 은수미 의원(출처: 국회방송)

무제한 토론이 끝나면 바로 표결이 시작되므로 24시간 진행된다. 속기사들 86명이 24시간 대기 중이고 의장은 1시간 30분, 부의장은 2시간마다 교대한다.

발언자는 휴식은 커녕 앉을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어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대부분 운동화를 신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야당의 날치기(...)를 막기 위해 본회의실에서 불침번을 섰다.

야당 의원들은 짧게는 1시간 50분(국민의당 문병호 의원), 길게는 10시간 18분(더민주 은수미 의원)까지 평균 5시간 씩 발언을 했다. 이 추세라면 더민주 의원들만으로 회기가 끝나는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도 종료되고 다음 국회 시작과 동시에 표결에 들어간다. 국회의장, 국회의원 1/4, 또는 대통령이 임시국회를 소집할 수 있기 때문에 필리버스터로는 테러방지법을 폐기할 수 없다.

그럼 왜 이런 무식한 짓을 하냐고? 필리버스터가 길어질 수록 똥줄이 타는 건 새누리당이기 때문이다.

더민주 강기정 의원(출처: 국회방송)

첫째, 야당 의원들이 테러방지법과 국정원의 과거를 까발리는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야당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애국보수 언론이 필리버스터 내용을 보도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

둘째,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야당 의원들이 주목받고 있다. 듣보잡이던 의원(더민주 은수미, 김용익, 정의당 박원석)들의 지명도가 대폭 올랐고 구태 취급을 받던 의원(더민주 강기정 목사)들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

셋째, 새누리당 의원들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총선이 두 달도 채 안 남아 있어 의원들에게는 하루가 아쉬운 상황이지만 필리버스터가 끝나자마자 표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전원 대기 중이다.

반면 과반이 안 되는 야당 의원들은 표결에 참가하지 않기 때문에 발언이 끝나면 지역구로 내려가 선거운동을 한다.

넷째, 다른 법안들 처리도 나가리된다. 박근혜 정권은 대기업들의 강력한 요구로 이번 국회에서 노동개혁법을 처리하기 원한다. 다음 임시국회는 빨라도 3월 10일 이후에 소집되는데 그때는 이미 선거 정국이라 의원들이 한가하게 노동법이나 붙들고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과 차기 총선을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민주와 정의당 역시 테러방지법의 당사자라 절실한 건 마찬가지. 친박과 갈등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