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필리버스터 중단: 마지막 주자, 눈물, 기록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는 더불어민주당의 운동권 출신들을 주축으로 시작됐다.

김종인 대표, 박영선 의원 등 중도파들이 반대했지만 이종걸 원내대표가 관철시켰다. 그가 친노를 극혐하다 보니 사쿠라란 오해를 받지만 이래 뵈도 운동권 출신이다.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을 수 없지만 새누리당 경선에 필요한 다른 법안 처리을 지연시킬 수는 있다. 하루 빨리 새누리당 경선이 시작되지 않으면 비박은 숙청될 운명이었기 때문에 비박을 설득해 테러방지법안을 수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비박 수장인 김무성 대표가 친박에 투항하면서 계획은 실패했고 필리버스터 이후 새누리당 지지율이 오히려 상승했다(...). 여기에 선관위가 3월 4일까지 선거구획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선거를 연기한다고 협박해 그에 대한 책임을 더민주가 독박쓸 판이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말헀지만 사실 출구전략이 없었다. 원래 운동권 출신들은 오늘만 산다(...).

이종걸 의원 필리버스터(출처: 국회TV)

2016년 2월 28일, 김종인 대표는 비대위 간담회를 열어 '이념 논쟁으로 번질 수 있으니 경제 문제로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출구 전략을 찾을 것을 요구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완주를 원했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필리버스터를 정회하고 선거법부터 처리할 것을 새누리당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밤 11시, 그는 의원들로부터 필리버스터 중단 여부를 위임받아 비대위 회의에 참석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완주를 고집했으나 '이러다가 선거 망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라는 김종인 대표의 호통에 장렬히 전사했다. 필리버스터 중단 발표는 다음날 아침 이종걸 원내대표가 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의원들에게 통보하기도 전에 박영선 의원이 해맑은 표정으로 필리버스터 중단 사실과 함께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줄 것을 호소하겠다'고 언론에 알렸다.

눈물 짓는 이종걸 의원(출처: 민중의소리)

언론은 아무 맥락 없이 필리버스터가 중단됐다는 사실만 보도했고 의원들과 좌파 정치팬들은 영문을 몰라 멘붕에 빠졌다. 결국 이종걸 원내대표는 중대 발표를 연기했다(...).

박영선 의원은 언론 유출에 대한 비난을 의식한듯 필리버스터 참여를 자청했지만 질질 짜면서 표를 구걸해 끝까지 똥을 쌌다.

필리버스터 마지막에는 세 야당의 원내대표들이 차례로 발언했고 더민주가 제1야당인만큼 이종걸 원내대표가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그는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것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이어 '28명의 의원들이 보여준 열정을 제가 날려 버릴 수 밖에 없어 정말 죄송하다. 정말 죽을 죄를 졌다'고 울먹였다. 정치생명까지 걸며 완주를 주장했는데 지도부의 반대로 중단해야했기 때문인 것 같다.

간간히 ㄹ혜체를 구사하긴 했지만(...) 발언 내용은 전반적으로 무난했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참여한 의원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나열하는 것으로 필리버스터는 192시간 26분 만에 종료됐다.

부축받으며 퇴장하는 이종걸 의원(출처: 오마이뉴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총 12시간 31분 동안 발언해 필리버스터 국내 최장 기록을 세웠다. 준비 부족과 박영선 의원의 깽판으로 발생한 잡음도 어느 정도 수습됐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평소 새누리당과 호구 합의하고 찌질하게 계파 싸움이나 한 건 사실이지만 최소 이번 필리버스터에서는 깔 게 없다. 시작한 것도, 끝까지 완주를 주장한 것도, 뒷수습을 한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이회영 선생 강림

비록 테러방지법 표결을 막지는 못 했지만 테러방지법과 국정원의 실체가 드러난만큼 필리버스터가 실패라고 볼 수 없다. 또한, 모처럼 야당다운 모습을 보여 더민주의 지지율이 상승해 정치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필리버스터가 종료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전원 찬성표를 던져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덕분에 국정원은 합법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할 수 있게 됐다. ^오^

앞으로 전화나 문자를 할 때에는 감청하는 국정원 직원에게도 반갑게 인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