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연평해전 김대중 논란 정리: 교전수칙, 영결식, 보상금

2002년 있었던 제2 연평해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 연평해전이 인기를 끌면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동네북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나게 까이고 있다. 제2 연평해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쟁점 1: 교전수칙 변경 지시

제1차 연평해전에서 해군이 북한군을 영혼까지 털어버리자 김대중은 과잉대응을 자제할 것을 지시한다. 이와 함께 교전수칙(전투 매뉴얼)에 4대 지침이 추가됐는데 이중 하나가 '먼저 발사하지 마라'였다. 애국보수들은 이 때문에 해군이 선제 공격을 할 수 없어 제1 연평해전에 비해 피해가 크게 늘었다고 김대중을 비난한다.

하지만 선제 공격 금지 조항은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있었다. 따라서 김대중이 종북이면 박정희도 종북이 된다(...). 영혼의 동반자

제1 연평해전에서는 북한군이 선제공격할 의사가 없었지만 제2 연평해전에서는 북한군이 작정하고 선제공격했고 설상가상으로 아군의 전투 대형마저 흐트러져 피해가 커졌다. 제2 연평해전 이후 아군도 처음부터 경고사격을 할 수 있도록 교전수칙이 수정됐다.

쟁점 2: 월드컵 관람

애국보수들은 장병들이 희생됐는데도 김대중은 한가하게 일본에서 월드컵 결승전이나 처보고 있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김대중은 연평해전 발발 후 4시간 30분만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늦장 대응 아니냐고? 안보왕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지 근 두 달 만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영화 연평해전(출처: 로제타 시네마)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천암함이 피격된지 일 주일이 지나도 내가 배를 만들어 봐서 아는데 파도에 천암함이 두 동강 날 수도 있다며 사상이 의심스러운 발언을 했고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에는 확전 안 되게라는 종북스러운 발언을 했다는 애국보수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제2 연평해전 다음날 김대중은 한일 정상회담, 월드컵 폐막식 참석을 포함한 방일 일정이 계획돼 있었기 때문에 NSC의 핵심 안건은 방일 취소 여부였다.

NSC에서는 격론 끝에 제2 연평해전을 우발적 교전이라 잠정 결론내고 확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 예정대로 방일 일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군이 제1 연평해전에 대한 보복으로 제2 연평해전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발발 3일 후 국군수도병원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출처: 연합뉴스)

그런데 제2 연평해전 발발 다음 날인 30일, 북한이 핫라인을 통해 우발전 교전(...)이었다며 유감을 표명하고 사태 수습을 위해 장관급 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북괴 빨갱이 새끼들이 사건 이튿날 유감 표명을 한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확전 가능성을 낮게 본 NSC의 판단이 옳았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북한이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어떠한 유감 표명도 하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김대중은 같은 날 일정대로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했는데 대통령이 국제 일정을 취소하면 대북 메시지로 간주돼 사태가 악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날 김대중은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대처 방안을 논의했으니 적절한 행보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밀고 있었기에 방일 계획을 취소하지 않은 건 이해가 가지만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이 폭망했기 때문에 애국보수들의 비난도 일리가 있다.

쟁점 3: 영결식 불참

연평해전 영결식(출처: 오마이뉴스)

애국보수들은 연평해전 영결식(장례식)에 김대중과 군 고위 인사가 조문하지 않았다며 종북이라 비난한다. 천안함 침몰사건의 희생자 영결식과 연평해전 추모식에 참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 군장 영결식에는 각 군 참모총장 이하만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대통령이 참석한 전례가 없었다.

승조원 39명이 전사한 1967년 당포함 격침 사건 영결식 때 참모차장이 참석했을 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콧배기도 안 비췄다. 그럼 박정희 전 대통령도 빨갱이인가? 남로당 빨갱이 출신 맞잖아

그로부터 7년 후인 1974년, 경비정 제863호 침몰 사건이 발생해 8명이 전사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역시 영결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바스 리갈을 빨고 있었을 수도. 1986년 충혼탑이 건립됐고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성역화 작업이 이뤄졌지만 이상하게 박정희는 반인반신, 김대중은 빨갱이다.

14명의 아군 사상자가 발생한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에는 합동 영결식 자체가 없었다. 왜냐고? 전통적으로 군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환자들을 분산 입원시키고 장례 일정을 따로 잡아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뿐만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도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왜 애국보수들은 찍소리도 못 할까? 애국보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입니다

그나마 연평해전 영결식이 최초의 합동 영결식이고 국방장관과 국무총리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대리해 박지원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전 조문을 갔다. 김대중 본인도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한 장병들을 방문해 위로하고 유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등 나름 예우를 갖췄다.

연평해전 추모비(출처: 딴지일보

참고로 당시 한국미래연합 당대표이자 국회의원이던 박근혜는 영결식은 커녕 입원한 장병들을 위문 조차 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의원은 제2 연평해전이 있기 한 달 전 무단 방북해 김정일 개새끼와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영결식과 추모식에 참석한 것은 의도야 어쨌건 칭찬받아 마땅하다. 강바닥에 20조 날렸으면 이거라도 해야지

쟁점 4: 유가족 보상 미흡

애국보수들은 유가족에 대한 보상금이 너무 낮다고 비난한다. 실제로 순직 당시 직급에 따라 유가족에게 3100만~8100만 원의 일시금과 38~86만 원의 유족연금, 61~62만원의 보훈연금이 지급돼 액수가 부족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군인연금법이 순직과 전사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액수가 법 한도 내에서 최대치였다.

이런 병신같은 군인연금법이 만들어진 때가 바로 애국보수 박정희 정권 시절이다. 베트남전쟁 전사자가 늘어나자 정부가 보상금을 아끼기 위해 전사를 공무 중 사망으로 간주하고 사망보상금은 사망 직전 받았던 월급의 36배로 정한 것이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은 1967년 국가보상법 2조를 제정해 직무수행중 입은 손해에 대해 보상을 받으면 추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꼼꼼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2004년 군인연금법이 개정돼 현재는 보상금 산정시 전사와 공무 중 사망을 구분하지만 제2 연평해전 희생자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못질로 김대중 정부는 국민성금이라는 편법을 통해 유가족에게 각각 총 3억5천만원의 보상금을 전달했다.

결론

미흡한 대처로 김대중을 비난하는 것은 공감한다. 하지만 군인연금법 고쳐서 월남전 전사자 통수 때리고 영결식 때 콧배기도 안 비친 박정희 전 대통령, 제2 연평해전 직전 무단 방북한 그 딸, 46명의 사망자를 낸 천안함 폭침 사건 때 북괴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숭고한 업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제2 연평해전 희생자들이 사건 당시에는 월드컵 분위기에 휩쓸려 국민들에게 외면받고, 애국보수 정권에서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