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보]국정원 직원 임모씨 자살 의혹 정리, 유서 조작?

국가정보원 임 모 과장(45세)은 기술개발국 소속으로 입사 후 약 20년간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일했다.

2011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이탈리아 보안업체인 해킹팀으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2012년부터 운용했다. 임과장은 초기 단계부터 작전에 참여해 4인으로 구성된 팀의 팀장을 맡고 있었다.

2015년 7월 10일,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지자 임과장은 수일간 국정원 내부에서 강도 높은 특별감찰을 받는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에 따르면 이즈음 임과장이 해킹 프로그램 관련 자료를 임의로 삭제했다고 한다.

18일 토요일 새벽 4시 50분, 임과장은 출근복 차림으로 자신의 마티즈 승용차를 타고 집을 나선다. 오전 10시에 후속 감찰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마티즈는 임과장이 같은 달 2일에 구매한 중고차다. 팀장 급이 왜 소형 중고차를 자살 2주 전에 구입했을까?

임과장은 국정원 대신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낚시터로 향했다. 이 낚시터는 임과장의 집 근처에 있어 평소 자주 찾았다. 목격자에 의하면 임과장은 새벽 6시, 낚시터 인근 한 야산으로 차를 몰았다고 한다.

오전 8시, 임과장이 출근을 하지 않자 국정원은 집에 있는 아내에게 연락한다. 특별감찰 시간인 10시가 돼도 임과장이 출근을 하지 않자 국정원은 다시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위치추적을 요청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부부싸움으로 집을 나갔다고 경찰에 거짓말을 할 것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게 얼마나 병맛이냐면, 국정원은 직원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실종되더라도 가족은 물론 경찰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임과장 부인은 오전 10시 4분, 119에 전화를 걸어 '남편과 부부 싸움을 했다. 오전 8시부터 10번 정도 전화했으나 안 받는다. 남편이 낚시를 좋아하는데 사고를 당한 것 같다.'며 실종 신고를 하고 위치추적을 요청한다. 남편이 낚시터로 간 줄은 어떻게 알았지?

임과장의 자살 장소(출처: YTN)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소방당국의 대응이다. 5시간 동안 연락이 안 된다고 신고하면 접수도 안 받아 준다. 미성년자조차도 실종신고를 하려면 가출 후 꼬박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실종됐지만 무사하지 않았나(...). 낚시터 같은 야외에서는 휴대폰 신호가 안 잡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위치추적까지 부탁하고 신고 접수 11분 후인 10시 20분에 수색에 들어갔다.

구조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위치 추적 결과 문제의 낚시터로 판명됐고 부인에게 연락하니 임과장이 평소 이 낚시터에 자주 간다며 일대를 수색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낚시 중에는 휴대폰 확인 안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소방당국은 어떻게 사고를 확신했나?

신고 접수 2시간 후인 오후 12시 2분, 소방대원들은 야산에서 임과장의 시신을 발견한다. 지난 4월 성완종 회장이 유서를 집에 남겨 두고 야산에서 자살했을 때, 신고 직후 위치 추적을 하고 1300여명의 경찰과 군부대까지 동원했는데도 신고 접수 7시간이 넘어서야 시신을 발견한 것과 대조적이다.

발견 당시 임과장은 마티즈 운전석에 앉은 채 경직돼 있었고, 조수석과 뒷좌석에는 타버린 번개탄이 놓여 있었다. 조수석에는 A4용지 3장 분량의 자필 유서가 놓여 있었는데 1장은 상사에게, 나머지는 가족에게 쓴 것이었다.

자살에 사용된 마티즈 차량(출처: 중앙일보)

보통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노란 테이프 붙이고 외부 접근을 막아 현장 보존을 한다. 사망자가 국정원 직원처럼 신분 자체가 기밀인 경우는 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 보존은 커녕 보란듯이 기자들에게 현장을 개방해 기자들은 차량을 만지기까지 했다.

자살 다음 날인 1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실시한 부검에서 폭행·저항 흔적 등 타살이 의심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판명됐다. 경찰이 추정한 임과장의 사망 시각은 오전 10시~11시 사이. 같은 날, 경찰은 유서 공개를 극구 반대하는 유족을 설득해(...) 상사에게 쓴 유서를 공개했다.

임과장은 유서에서 국정원 상사, 동료들과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업무에 대한 욕심으로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에 대한 의혹을 의식한듯 내국인과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경제, IT, 산업스파이를 다루는 기술개발국 소속인데 왜 대북, 대테러 공작에 참여했나?

임과장은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대테러, 공작활동에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고 말했다. 내국인 사찰을 안 했다면서 삭제는 왜 하나(...).

더군다나 임과장은 기술자이기 때문에 상부 지시 없이 기밀 자료를 삭제했을 공산은 낮다. 어차피 삭제해도 모두 복구 가능한데 전문가가 그것도 몰랐을 수 있나? 만일 임과장이 자의적으로 자료를 삭제한 것이라면 국정원의 기밀 자료 관리가 개판이라는 소리인데 국정원에게 방첩활동을 맡길 수 있나?

그리고 누군가가 유서에 첨삭을 해 '공작활동'은 '대북 공작활동', '지원했던 자료'는 '오해를 일으킬 지원했던 자료'로 변경했다. 임과장 본인이 첨삭한 것이라면, 곧 죽을 사람이 조직 걱정하고 있단 말이 된다(...). 반면 임과장이 첨삭한 것이 아니라면 유서 조작이 된다.

유서는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 치의 주저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로 끝맺는데 유서가 아니라 시말서같다(...).

임과장 유서(출처: 중앙일보)

유서 내용 중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다. 유서 말미에 '국정원의 본연의 임무..' 문장에서 줄이 위로 올라가 밑에 첨삭할 공간이 생긴다. 첨삭할 것을 미리 알았다는 말인데, 유서를 옮겨 적었거나 조작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유서는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에 공개됐는데, 국정원이 당일 저녁 직원 일동 명의로 '동료 직원을 보내며'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한다. 일요일 저녁에 국정원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동 성명서를 썼을 것 같지는 않고, 똥줄이 탄 고위 간부가 쓴 것 같다(...).

국정원 간부 직원 일동은 '해킹 프로그램이 민간인 사찰에 사용된 것처럼 매도돼 임과장은 분노했으며, 국정원에 누가 되지 않았나 걱정했다'는 주변 동료의 말을 전했다. 이어 '유서에 내국인, 선거에 대한 사찰이 전혀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는데 죽음으로 증언한 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일침했다. 성완종 리스트, 장자연 리스트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자.

경찰은 가족들에게 쓴 2장의 유서도 공개했다. 마치 임과장의 자살을 제발 믿어달라는 것처럼.

이번 사건이 김성모 화백의 <럭키짱>을 방불케하는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하기 때문에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됐다. 첫째, 임과장은 가공 인물이다. 하지만 임과장의 소속과 최근 고강도 특별감찰을 받은 전력이 국정원에게 불리한 증거가 되는데 가공인물이라면 이렇게 설정했을 리 없다. 게다가 영결식에서 임과장의 아내와 육사 생도인 큰딸의 신분까지 노출됐기 때문에 가공인물일 가능성은 제로다.

둘째, 임과장은 생존해 있고 노숙자 시신을 이용했다. 그렇다면 영결식을 공개로 진행할 이유가 없다. 또한 임과장의 아내가 발인 중 대성통곡을 했고 큰딸도 눈물을 흘렸는데 일반인이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나친 음모론은 고인드립이다.

셋째, 자살 쇼를 벌리다가 사고가 일어났다. 실제로 2014년, 국정원 권 모 과장이 간첩조작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던 중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기도하다 기억상실(...)에 걸린 감동적인 사건이 있었다.

워낙 앞뒤가 안 맞는 사건이지만, 해킹 관련 자료를 삭제했는데 특별감찰을 받게 돼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 그나마 설득력 있는 자살 동기다. 아니면 자살당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