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반송사유 '걸어서 배송하라' 아파트 갑질 논란

짤방은 한 아파트에 배송된 소포가 반송된 사진이다. 반송 사유에는 '해당 아파트는 택배차량 진입금지로 배송에 어려움을 격고 있다'며 '걸어서 배송하라는 것이 아파트 측의 입장'이라고 적혀 있다.

짤방을 본 인터넷 열사들은 '주민들의 갑질', '품위 떨어질까 봐 택배차량 금지시켰다', '부자도 아닌 것들이 부자 행세한다'고 흥분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간단한 사건도, 이 아파트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문제의 아파트는 지상에 차 없는 단지, 즉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주민들이 조깅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아파트로 최근 5년 이내 지어진 신축 아파트 대부분이 해당한다.

지상에는 주차장이 없으며 긴급차량(소방차, 구급차, 경찰차)과 대형차량(청소차, 이사차량) 등만 진입할 수 있고 차도가 없이 보도블럭으로 덮힌 곳들도 많다. 모든 주차장이 지하에 있기 때문에 입주민 차량과 배달 차량은 지하로 진입한다. 택배의 경우, 예외적으로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허용하거나 택배보관소가 아파트 입구에 마련돼 있다.

최근 이런 형태의 아파트와 택배사 간에 갈등이 종종 빚어지는데 짤방이 바로 이 같은 경우다. 문제의 아파트는 택배 보관소 없이 택배차량의 지하차도 진입만 허용하는 경우로 보인다. 법규 상 아파트 지하차도의 층고는 1톤 탑차가 통과할 수 있게 설계돼 있지만 대부분의 택배차량들은 증축을 해서 차고가 높기 때문에 진입할 수 없다.

출처: CJ 대한통운

따라서 택배차량은 지상도로만 이용할 수 있는데 아파트 측이 1톤 탑차를 이용해 지하로 진입할 것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생긴 것 같다.

탑차를 증축한 택배기사들의 잘못이 아니냐고? 배송료 2500원에서 택배기사의 수수료는 5~700원이나 차량유지비는 모두 본인 부담이며 배달 사고에 대한 책임은 택배사가 택배기사에 떠넘긴다. 택배 기사의 수수료가 턱 없이 낮고 위험 부담이 커 한 개라도 더 실으려고 택배차량을 증축한 것이다.

게다가 증측을 하지 않으면 택배기사들이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높아진다.

아파트 측이 '차량을 교체할 수 없으면 걸어서 배송하라(...)'고 나오자 택배업체들이 배송을 거부한 것이다. 물론 걸어서 배송하라는 건 개드립이겠지만 택배차량 교체 또한 이기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짤방의 반송 사유에 '택배기사는 노예가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는데 다수의 택배사들은 택배기사에게 무임금으로 물품 분류 작업을 시킨다. 보다시피 이 사건은 택배기사와 아파트 간 대립이 아니라 택배사와 아파트 간 대립에 택배기사가 이용된 것이다.

현재 아파트와 택배사는 치킨게임 중이다. 입주민들은 홈쇼핑이나 인터넷을 하다가 뽐뿌가 와도 배송이 안 되니 주문을 할 수 없어 불편하고, 택배사 역시 매출이 줄어 득될 게 없다. 결국 더 급한 쪽이 꼬리를 내리게 돼 있다.

한진택배(출처: 세계일보)

실제로 한 택배기사는 자신의 배송 구역에 지하 진입만 허용하는 아파트가 포함돼 있는데 전체 배송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 어쩔 수 없이 승합차를 사비로 구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승합차는 용적량이 적어 여러 번에 나눠 배송하다 보니 세 시간 정도 추가 근무를 해야한다고 한다.

이처럼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들 중 택배 배송이 안 되는 곳들이 더러 있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배송료와 택배기사 수수료의 현실화다. 오늘날의 빠르고, 싸고, 간편한 택배 서비스는 사실 택배기사들을 착취해 이룩한 것이기 때문이다. 낮은 배송료와 수수료 모두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치루지 않으려는 도둑놈 심뽀에 기인한다.

물론 대한민국을 리셋하지 않는 이상 꿈 같은 소리고(...) 보다 현실적인 해결책은 아파트 입구에 택배 보관소를 설치하는 것이다. 택배차량의 진입을 허용하면 지상에는 도로가 없어 보도블럭이 손상될 수 있고, 다른 배달 차량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택배 보관소를 운영하려면 인건비가 소요되겠지만 본인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를 원했다면 그에 대한 비용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평균 매매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걸 봐도 사람들이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를 선호하기 때문에 미래의 표준이 될 것이고 이에 따라 택배사와 갈등도 늘어날 전망이다. 아파트 배송 거부 논란의 원인은 댓가를 치르지 않고 대접만 받기 바라는 얌탱이 마인드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는 것이 웃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