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암매장 사건 1: 방임어머니 살해, 종교, 용인아파트 어디?

2001년, 박 모(42, 여) 씨는 명문대 출신 은행원 김 모 씨와 결혼했다. 김 씨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자 박 씨도 친정이 미국에 있어 동행했고, 현지에서 두 딸을 출산해 딸들은 미국시민권자가 됐다.

박 씨(이하 방임 엄마) 부부는 귀국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2008년, 방임 엄마는 대학 동창인 백 모 씨로부터 휴대폰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 모(45) 씨를 소개받는다.

이 씨는 박 씨에게 '수익금을 주겠다'며 휴대폰 대리점 사업에 투자를 권유한다. 이 씨는 과거 백 씨 자녀의 학습지 교사로 백 씨 역시 6천 만원을 투자한 상태였다.

친정 어머니의 아파트를 처분해 여윳돈이 있던 박 씨는 수차례에 걸쳐 10억 원을 투자한다.

하지만 이 씨가 투자금을 모두 날리면서 백 씨는 이 씨 집에서 얹혀 살게 됐고 방임 엄마 또한 남편과 크게 다툰 뒤 5세, 3세이던 두 딸을 데리고 가출한다.

백 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방임 엄마에게 이 씨의 집에서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교동마을현대필그린아파트 72평형(출처: 연합뉴스TV)

이 씨의 집은 경기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위치한 <교동마을현대필그린아파트> 72평형이다. 방이 5개나 되는 대형 아파트지만 이 씨 부부와 자녀 2명, 이 씨의 언니(50), 백 씨와 자녀 2명, 백 씨 친정 어머니(69), 총 9명(...)이 살고 있었다.

2009년 1월, 방임 엄마 모녀가 이 씨 집에 들어 오면서 한 지붕 세 가족, 12명의 집단 동거가 시작됐다. 집단생활에 종교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임 엄마와 백 씨는 이 씨의 휴대폰 대리점에서 일하면서 매월 5~10만 원을 생활비 명목으로 이 씨 부부에게 지급했다.

이 씨의 아파트는 당시 실거래가 6억 원 정도였다. 학습지 교사였던 이 씨가, 휴대폰 대리점 사업도 부진했는데 무슨 돈으로 이 아파트를 구입했지? 10억 + 6천만 원

이 씨 아파트 평면도(출처: 다음부동산)

방임 엄마는 남편, 친정과 연락을 끊고 자녀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는 등 교육적으로 방임했다. 남편 또한 아이들을 찾기는 커녕, 무단가출과 장기간 연락두절을 이유로 강제이혼을 신청해 법적으로 이혼했다.

이 씨 때문에 방임 엄마와 백 씨는 전재산을 날렸지만 이 씨가 집주인이자 고용주였기 때문에 이들 가족은 이 씨에게 복종했다.

백 씨 어머니는 이 씨의 지시로 2010년 9월 한 달 동안 집을 비울 때마다 방임 엄마의 두 딸과 백 씨의 초등학생 아들을 베란다에 4시간씩 감금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베란다에서 용변을 본 적도 있었다.

이 씨는 2011년 10월부터는 방임 엄마의 딸들만 감금했고, 특히 큰딸 김 모(당시 8세) 양은 말썽을 피운다는 이유로 하루 한 끼만 먹일 것을 지시했다.

방임 엄마 박 씨(출처: 한국일보)

10월 25일 밤, 방임 엄마는 '가구를 긁어 훼손한다'며 김 양을 베란다에 감금한 다음 이 씨와 함께 방 안에서 30분 동안 회초리로 종아리와 허벅지를 폭행했다. 김 양은 이씨를 향해 다 죽여 버리겠다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당시 김 양은 겨우 8살이었다.

방임 엄마는 다음날 아침에도 김 양에게 30분 넘게 회초리질을 했고 이 씨는 '애를 살인자로 키울 거냐. 때리려면 제대로 때려라. 동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입을 막아서라도 교육시켜라'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방임 엄마는 김 양의 손발을 포장 테이프로 의자에 묶고 입을 막은 뒤 매질을 이어갔고 오전 11시경, 묶인 김 양을 내버려 두고 출근했다.

당시 집에는 이 씨 등 3명의 어른이 있었지만 아무도 김 양을 풀어 주지 않았다. 오후 4~5시경, 김 양의 의식이 없는 것을 발견한 이 씨가 방임 엄마에게 연락했지만 끝내 사망했다.

방임 엄마가 '경찰에 신고하면 작은딸은 누가 키우느냐'고 호소해 이 씨 등은 김 양을 암매장하기로 결정하고 김 양의 시신을 가방에 넣어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이 씨 지인 소유의 다세대주택 지하방에 보관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