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설정 구멍들

정윤회 감찰 보고서, 소위 말하는 정윤회 문건의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은 강경했다. 무슨 일 터지면 버로우타거나 곱게 한복 입고 해외로 튀는 순방을 떠나는 평소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에 비유했고, 정윤회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했다. 국기문란이란 국가의 기초를 흔들고 질서를 문란하게 한다는 뜻이므로, 박 대통령의 말씀을 정리하면 찌라시가 유출돼 국가의 기초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내부 문서 유출이 국기문란이라면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박근혜 후보 유세 현장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공개한 것도 국기문란이 되겠다. 그 때 우리 각하는 왜 입 다물고 있었을까? 이건 착한 유출임

그리고 내부 문서 정도가 아니라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김무성은 쿨하게 무혐의 처리됐다. 그런데 국가기밀도 아닌 정윤회 문건 좀 유출된 것 가지고 청와대와 검찰은 왜 게거품을 물까? 공주님을 지켜라

정윤회 문건이 찌라시는 박 대통령 말씀, 구구절절 옳다. 그런데, 이 찌라시를 만든 곳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이다.(...) 공직기강비서실에서 한가하게 찌라시나 만들고 있다면 조응천을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한 게 박 대통령이니 박 대통령도 국기문란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군대에서 가혹 행위 사건이 거하게 나면 최고 책임자인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불려 나가거나 심하면 사퇴까지 한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역시 청와대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청와대의 수장인 박 대통령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것인데... 각하가 이걸 이해할 리가.

그리고 정윤회 문건의 외부 유출이 국기문란을 초래할 만큼 심각한 내용이라면,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인간들부터 족쳐야한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누가 북괴 김정은이를 찬양하는 찌라시를 만들어 카톡에서 지들끼리 돌려 봤는데, 다른 놈이 그걸 인터넷에 올렸다고 치자. 그럼 찌라시를 만든 놈과 그걸 인터넷에 올린 놈 중 누가 더 심각한 종북일까? 당연히 김정은 찬양 찌라시를 만든 놈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윤회 문건을 유출한 놈보다는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의 죄질이 훨씬 나쁘다. 그런데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은 원래 근무하던 경찰서로 복귀시키고, 총책임자인 조응천은 사표를 받는 것으로 끝냈다. 조응천이 박 대통령 동생 박지만의 측근이라는 건 우연이겠지.

툭하면 고소질하는 청와대가 정작 정윤회 문건 작성자들은 고소를 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정윤회 문건의 내용이 진짜라고 믿는 것이다. 박관천이 체포된 건 문서 유출 혐의 때문이지, 문서 작성 때문이 아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실(출처: 노컷뉴스)

사건의 몸통인 조응천은 놔 두고 깃털인 유포자만 쥐잡듯이 찾고 있으니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최 경위가 자살한 것도 무리한 수사로 유출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다가 일어난 비극이다.

현재 청와대의 모습은 회사 비리를 언론에 제보한 내부 고발자를 찾아 조지려는 회사 경영진 같다.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 때 진상 짓을 한 조현아를 징계하기 보다는 이 사실을 외부에 공개한 내부자 찾기에 혈안이 됐던 대한항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