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정당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은 헌재의 잉여짓

통합진보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강제 해산됐다. 정당 해산은 세계 정치사에서도 극히 드문 사례로, 전 세계 여섯 번 째,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독일에 이어 두 번째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

헌법재판소는 12월 19일에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8대 1의 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2013년 8월 내란음모 사건으로 기소되자 같은 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관광 순방 중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정당해산심사의 판결이었다. 통합진보당은 이로써 창당 3년 만에(...) 해산당하고 말았다.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의 강제 해산 직후, 시사평론가들과 인터넷 키워 논객들은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민주적 기본 질서 파괴', '사법사에 남을 큰 오점' 같은 구름같은 소리(...)를 했지만 이번 판결이 정작 뭐가 잘못 됐는지는 설명을 안 하길래 답답해서 필자가 그 이유를 찾아 보았다.

정부가 정당해산심사 청구를 한 결정적 이유가 이석기 일당이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인데 정작 고법에서는 내란음모 혐의가 인정 안 됐고 현재 대법원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내란선동죄는 빼도 박도 못하고 인정됐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고 해산심판을 해도 늦지 않은데 번갯불 콩 볶아 먹듯 판결을 내린 점은 의아한 부분이다. 덕분에 조현아 땅콩회항에도 안 묻힌 정윤회 문건 사건이 완전히 묻혔다.

정당해산 명령을 내리리면 해당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 헌재는 통합진보당 강령에는 그런 위험이 없다고 밝혔지만 진정한 목적이나 숨은 목적을 추정해보면 그런 위험이 있다(...)고 한다. 정리하면, 통합진보당이 나라를 말어 먹을 위험이 있는데 그 증거는 나의 추리력이라는 것이다.(...) 뇌피셜

AP통신, 미국 뉴욕타임즈, 영국 BBC, 일본 교토통신같은 종북 외신들이 일제히 통진당 해산은 표현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라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출처: 한겨레

통진당이 개쓰레기라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통일하자면서 애국가도 안 불러, 소수정당 탄압 말라면서 당 안에서는 쪽수로 밀어, 민주팔이 하면서 북한의 권력 세습은 찍소리도 못 해, 대표라는 작자는 6.25가 남침 맞냐는 질문에 어버버버하는데 이것들이 정상인가. 통진당 의원들이 유난히 군사 기밀에 관심이 많은데다가 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석기의원은 뜬금없이 탈북자 명단까지 요청했다.

하지만 통진당이 민폐덩어리인 것과 국가가 통합진보당을 강제로 해산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정당을 해산을 시키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 법적 근거가 너무 허접해 어거지로 해산시킨 것 같다.

어차피 통진당은 호흡기만 달고 있는 상태였다. 2012년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때 경기동부의 패악질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본색이 다 까발려 졌고 이석기가 내란선동죄로 기소된 이후 야권 연대도 물 건너가 사실상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 의원 배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시한부 환자를 '저 놈은 미친 놈'이라고 총으로 쏴 죽인 꼴이다.

선거판에서 통진당이 궤멸됐으니 소기의 성과를 이룬 것 아니냐고? 정당 해산시키면 뭐 하나, 당원들은 다 고대로 있는데.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정당 세탁하고 대권 잡았듯, 통진당 세력도 강령 좀 손질해서 창당하면 그만이다. 이석기 패밀리만 다시 지하로 돌아가 막후 정치를 할 것이고.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출처: 한겨레)

이번 정당해산 판결로 통진당은 안으로는 더욱 더 뭉칠 것이고, 밖으로는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투사 코스프레도 할 수 있으니 정당해산이 도리어 회생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내년 보궐선거에서 통진당의 지역구 세 석은 야당 강세 지역이니 모두 새정연이 받아 먹겠지만 그 다음 해가 총선이니(...) 큰 차이는 없을 듯.

쉽게 말해, 정윤회 문건이 묻히는 것 빼고는 통진당 해산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일부 언론들이 통진당 해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는데, 법리 해석은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별 의미 없고, 이 사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헌법 전문가인 헌법학자들이다.

JTBC가 2013년 11월, 헌법학자인 대학 교수 3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14명은 대답을 거부했고(...) 나머지는 절반 이상이 통진당 해산에 반대했다.

같은 달 노컷뉴스가 한국헌법학회 소속 헌법학자 69명을 대상으로 한 의견조사에서도 33.3%가 통진당 해산에 찬성, 46.4%가 반대, 20.3%는 기권했다. 정부가 해산심판을 청구한 행위에 46.4%가 정당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조처라고 밝혔다.

8대 1이란 압도적 스코어로 통진당 해산에 찬성한 헌법재판관들과는 대조적인데, 헌법재판관들이 편향성이 의심되는 이유기도 한다. 여야 합의에 의해 추천된 강일원 재판관,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추천한 이정미 재판관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애국 보수 성향이다. 유일한 반대표도 유일한 야당 추천 인사인 김이수 재판관이었다.

하지만 야당에서도 추천한 강일원과 이정미 재판관이 찬성표를 던진 점, 그리고 언론사 의견 조사에서 찬성한 헌법학자들이 30프로가 넘는 것을 보면 이번 해산 명령으로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것은 오바다. 그냥 민주주의를 개패듯 팬 정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