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 씨엘 인터뷰 논란, 아시아 여성 디스?

여성 아이돌 그룹 2NE1의 래퍼 씨엘(CL)이 미국의 한 잡지와 나눈 인터뷰에서 동양 여성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씨엘은 패션디자이너 제레미 스캇과 함께 미국 패션, 대중문화 월간지인 페이퍼(Paper) 9월호의 표지모델로 선정돼 인터뷰를 가졌다. 씨엘은 그간 제레미 스캇의 패션쇼와 파티에 참석하면서 친분을 쌓아왔다.

무난한 내용의 인터뷰였는데 '한국은 럭셔리 시장의 강자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문제가 됐다. 아래는 씨엘의 답변을 번역한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찾고 남들과 달라 보이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특히 여자들이 그런데, 제가 여기(미국) 오려는 이유에요. 동양 여자의 모범이 되려구요.

철저히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이 동양 여자의 모범이 되겠다는 패기 보소.

많은 동양 여자들은 평범한 걸 원해요. 그게 무난하니까요. 중요한 건 제 팬 중에 그런 여자들이 많다는 거에요.

요즘은 고딩들도 화장은 물론이고 써클렌즈까지 끼고 다니던데 노량진 공시생들 중에 CL 팬이 많은 건가.

페이퍼 9월호 표지모델 CL과 제레미 스캇
대담해지고 싶지만 '저렇게 해도 되구나'하고 닮고 싶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거죠. 여기(미국)에는 그런 걸 할 사람이 없잖아요. 제가 아시아를 위해 할 만큼 했고 많은 여자들을 바꾼 것 같아요. 하다 못해 (내가 쓰는) 폰케이스더라도 한 번 써 보는 거죠.

내가 아시아의 국모다. 근데 여자들에게 씨엘 닮았다고 하면 화낸다(...). 아시아는 커녕 한국도 제패 못 한 2NE1의 래퍼가 무엇을 바꿨는지 미스테리.

동양 여성들은 순종적이고, 부끄럼이 많고, 겁도 많고 조용하지만 바뀐다는 게 눈에 보여요. 전 동양 여성들이 더 강해졌으면 좋겠고 남과 다른 것이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특별하다는 것이 럭셔리죠. 하지만 아직은 그게 없는 것 같아요.

동양 여성이 순종적이고, 부끄럼이 많고, 겁도 많고 조용하다니 여성시대와 쭉빵카페는 흑인 커뮤니티인가(...). 사실 CL이 묘사한 동양 여성은 동양 여성에 대한 서구세계의 고정관념이다. CL이 2세 때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일본에서 7년, 프랑스에서 2년은 산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은 서양이 아니고 저학년 초딩이 프랑스에서 2년 살면서 서구적 가치관을 갖게 됐을 것 같지는 않다.

CL의 인터뷰는 8월 26일에 페이퍼 사이트에 공개됐고 다음날 국내 매체에도 보도됐지만 이상하게 1주일이 지나서 국내 커뮤니티에 논란이 일었다. 국내 매체에서 인터뷰 내용을 호의적으로 번역한 것도 한 이유인듯. 국내 커뮤니티들은 대동단결해 씨엘을 비난했는데 특히 동양 여성인(...) 여초에서 여론이 안 좋았다.

쭉빵카페는 관련 글에 17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뭐가 문제지', '틀린말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옹호론자도 있었으나 '단어 선택이 잘못된 듯', '인종차별적이고 섣부른 일반화', '씨엘이 아시아 여자들을 바꿨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효리 급도 아닌데 자존감 되게 높아 보인다', '씨엘은 아시아인 아닌가 봐', '우물안 개구리'라는 비난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베스티즈 역시 '철 지난 여성해방 소리 해주면서 서양인들한테 아시아 여자의 선구자처럼 보이길 원하겠지', '아시아는 언감생심이고 국내 영향력도 미미하기 짝이 없고만', '요즘 화장발 좀 받는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봄(...)'이라고 비난했다.

사실 미국 가수들, 특히 래퍼, 록밴드들은 허세를 홍보 수단으로 쓰기 때문에 구국의 영웅이나 된 것처럼 입을 털고 팬들도 이를 자신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래퍼들은 돈자랑 못 해 안달이고 마약 복용, 여자 친구와 성관계한 사실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따라서 CL의 허세 쩌는 답변은 이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며 미국 힙합계 기준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

출처: CL 인스타그램

하지만 동양 여자들이 평범한 걸 원한다, 순종적이다, 부끄럼이 많다, 겁이 많다 등은 선입견을 넘어 성차별, 인종차별로 비춰질 수 있다. 만일 씨엘이 아니라 백인, 흑인 여성이 저런 드립을 날렸다면 가루가 되게 까였을 것이다.

외국의 케이팝 커뮤니티도 이 대목을 문제 삼고 있다. 'CL은 자기가 고정관념을 깬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고정관념을 고착시키는 것 같다', '자기가 나은 것처럼 보이려고 왜 다른 동양 여성을 깎아 내리지?', '씨엘은 여성들이 겪는 진짜 문제는 얘기하지도 않고 이미지, 옷, 스웨그(간지)만 생각하지'라는 등 한국 커뮤니티의 반응과 다를 바 없었다.

'아시아를 위해 할 만큼 했고 많은 여자들을 바꾼 것 같다라니 어느 나라 얘기지?', '뭘 바꾸셨어요?'라며 씨엘을 조롱하는 댓글도 보였다.

CL이 평소 국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보인 태도와는 상반되는데 미국 시장을 겨냥한 인터뷰인 만큼 답변 내용은 소속사의 지침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서양인의 시각 대로 동양 여성을 묘사한 것은 매우 괴랄하다 하겠다.

YG가 CL의 캐릭터를 '동양 여성 롤모델'로 잡은 것 같은데 이게 무슨 프로레슬링 기믹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될 일인가. 피겨 원톱 김연아도 저렇게 말했다면 개처럼 까였을 텐데 아이돌이 저러면 어쩌자는겨. 이 와중에 디스패치는 '자신감과 자부심'이라며 쉴드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