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일본인인질 참수사건 정리 1: 유카와하루나 피랍

2015년 1월 20일, 개막장 이슬람 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 ISIS, ISIL)가 2억 달러를 주지 않으면 일본인 인질 두 명을 참수하겠다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일본이 발칵 뒤집힌다.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민간군사회사를 경영하는 유카와 하루나(42세)와 프리랜서 언론인 고토 겐지(47세)였다. 일본인이 어쩌다가 내전 중인 시리아, 그것도 IS 점령지에 가게 된 걸까.

유카와 하루나는 언론에 민간군사기업(분쟁지역에서 경호 업무를 제공하는 회사) CEO로 보도됐고 자신을 경호 컨설턴트로 소개하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그가 과연 그럴 능력이 되는지 의문이다.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던 유카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밀리터리 덕후들을 상대로 군용품을 파는 가게, 소위 말하는 밀덕샵을 연다. 가게가 잘 돼 2호점도 열고 단골 중 한 명과 결혼까지 하지만 몇 년 뒤 빚더미에 앉아 도산한다. 그는 야반도주 후 공원에서 한 달간 노숙자 생활을 했고 빚은 그의 아버지가 아파트를 팔아 갚아 줬다.

2008년 거세(...)로 자살 시도를 했지만 부인이 말려 목숨은 건졌고, 이 부인은 2년 뒤 폐암으로 사망한다. 이후 전생에 자신이 중일전쟁의 일본군 여자 스파이인 카와시마 요시코였다고 믿게 되고 원래 이름인 마사유키에서 주로 여자 들이 많이 쓰는 하루나로 개명한다.(...)

IS의 협박 영상에 나온 고토 겐지(왼쪽)와 유카와 하루나

그는 한국의 수꼴에 해당하는 넷우익이었는데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 수꼴 정치인과 인증샷을 찍어 올리고, 고노 담화 철폐중국 내 안중근 기념관 철거를 주장했다. 그는 블로그에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는 개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중년이 된 그는 분쟁지역 내 일본 기업에 경비 업무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대출을 받아 자본금 300만 엔(약 2800만 원)으로 민간군사회사인 PMC Japan를 설립했다. 직원도 없이 허름한 상가 건물의 작은 사무실을 임대했다니 구멍가게라고 보면 된다.

2014년,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내전 중인 시리아로 현장조사를 하기 위해 떠난다. 말이 현장조사지 그가 경호 업무를 제공할 자본도 없었고 배경 지식이라고는 과거 오덕질 할 때 익힌 것이 전부라 철 모르고 시리아로 떠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시리아에서 찍은 동영상들을 올리며 자신의 회사를 홍보한다.

유카와의 홍보 영상 중(출처: Haruna Yukawa)

같은 해 4월 자유 시리아군에게 일시 구금됐는데 심문받는 과정에서 아시아계 일원과 친해졌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시리아로 의약품 등 물자를 수출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는 자유 시리아군에게 억류된 동안 내전 중인 시리아를 취재 중이던 같은 일본 출신인 고토 겐치 기자를 만나게 된다. 고토 기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중동과 아프리카 일대의 분쟁 지역을 취재하며 전쟁의 참상을 전한 종군기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고토 기자는 소년병 이야기, 전쟁터로 내몰린 아이들의 삶 등을 저술과 강연을 통해 보도해 왔으며 일본유니세프협회와도 협력했다

유카와는 2014년 6월 일본에 있는 사무실을 비우고, 7월까지 고토 겐치 기자의 이라크, 시리아 여행에 동행하며 분쟁지역 내 활동 방법을 배운다. 임대비를 아껴 여행 경비로 쓰기 위해 사무실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카와는 고토 기자와 동행하면서 찍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고토 기자의 모습도 보인다.ㅜㅜ

현지 언론과 인터뷰 중인 고토 겐지(출처: Haruna Yukawa)

고토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유카와가 CEO 치고는 매우 온화한 성격을 가졌다고 말했는데 고토 기자도 유카와에 낚여 유카와의 회사가 페이퍼컴퍼니인지 몰랐던 것 같다.(...)

고토 기자와 헤어진 유카와는 2014년 8월 14일, 시리아내 시리아군과 IS군의 대치 지역을 방문한다. 총격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유카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려 전장으로 들어갔다가 IS군의 탱크에 포위된다.

현장조사한다는 사람이 뜬금없이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은 이유는 고토 기자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종군 기자로 착각했거나(...) 긴박한 전투 상황을 화면에 담아 유튜브 채널에 올려 사업 홍보에 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카와는 IS군에 체포되고 두들겨 맞는데 생포 당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사진사로 소개했다.(...) 물론 나중에 민간군사회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마침 미국이 이라크 북부에서 IS 공습을 시작한 직후인데다, 유카와는 체포 당시 자동차에 총이 있었고 신분도 용병과 다를 바 없는 민간군사기업 대표였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 하고 간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일이 10월로 잡혔으나 유카와는 일본인으로 영어가 안습이었다. 따라서 일본어 통역이 필요했는데 IS는 일본의 IS통 쓰네오카 고스케에게 도움을 청한다.

2편으로 계속된다. 2편은 여기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