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영입 1: 문재인 삼고초려, 선대위원장 임명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최후통첩을 날린 직후인 2015년 12월 11일, 3선 이상 중진 의원들 중 3분의 2인 22명이 문재인 대표의 사퇴와 함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3개월 전, 대표를 흔들지 않겠다고 약속해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재신임투표를 철회시켜 놓고 뒤통수를 친 것이다. ^오^

하지만 김성곤 의원은 '다시는 흔들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일침했다. 그는 4선임에도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신청(...)하며 의원직에 강한 애착을 보였으나 결국 백수가 됐다.

안철수 의원을 필두로 반노 의원들의 탈당이 시작되자 중진들은 문재인 대표에게 조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과 함께 공천권 포기를 요구했다.

중진들이 지금까지 당혁신, 문재인 필패론, 친노패권주의 등을 이유로 문재인 퇴진을 요구했지만 진짜 이유는 바로 공천권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는 김부겸 전 의원과 탈당설을 언론에 흘리며 간을 보고 있던 박영선 의원에게 공동 선대위원장직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출처: 국민일보)

그래서 나온 대안이 김종인(77) 건국대 석좌교수다.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을 주도해 경제민주화의 마스코트 아버지란 평가를 받아 왔다.

박영선 의원의 탈당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녀는 MBC 기자 시절 김종인 교수를 알게 돼 정계 입문 후 재벌 개혁과 정치 진로 등에 대한 자문을 받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표는 2012년 대선 때에도 지원을 요청했으나 이미 박근혜 후보의 지원 요청을 수락한 직후라 무산됐었다. 문제는 경제 전문가인 김종인 교수를 선대위원장에 임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첫째, 김종인 교수는 단 한 번도 선거에서 승리해 본 적이 없다. 4선 의원이지만 전부 비례대표였고 지역구 선거는 한 번 출마해 떨어졌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에 합류해 선거를 지휘했으나 열린우리당에 박살이 났다(...).

1993년 구속 당시 파오후 김종인 의원(출처: MBC)

둘째, 정치인으로서 무능하고 비리 전력까지 있다. 국회의원 시절 대표발의가 전무하고 공동발의한 법안도 경제와 무관하며 1993년에는 2억 원의 뇌물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셋째, 새천년민주당 부대표 시절, 지도부와 불화로 당무를 거부하는 등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는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을 약속하며 김종인 교수에게 선대위원장직을 제의했다.

김종인 교수는 '비례대표 얘기나 할 거면 가라'고 꾸짖으며 '문재인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권한을 내려 놓고 뒤로 물러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세균 의원, 손혜원 홍보위원장도 설득에 나섰다. 특히 손혜원 위원장은 '우리 당에 모셔올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랄 만큼 신뢰가 깊은데 그녀는 야구계의 백정, 내로남불 끝판왕, 언플왕인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도 존경한다(...).

김종인 선대위원장과 문재인 대표(출처: 오마이뉴스)

문재인 대표가 '의견을 전적으로 다 따르겠다. 모든 걸 다 내려놓을 수 있다'고 사정하자(...) 김종인 교수는 비상대책위원장, 즉 임시 당 대표 자리를 요구한다. 비례대표는 성에 차지 않는다

2016년 1월, 김종인 교수는 선대위원장으로 시작해 비대위원장을 맡기로 문재인 대표와 합의한다. 할파고 설계 성공

다음 날, 더민주는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김종인 교수를 공동 선대위원장에 임명했고 문재인 대표는 호남홀대론을 수습하기 위해(...) 호남 출신 공동 선대위원장 영입에 나선다.

하지만 김종인 교수가 '사람들이 상황을 호도하기 위해 공동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언플해 어쩔 수 없이 단독 선대위원장직을 줬다(...).

다음 편에 계속.